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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셔 가(家): 완벽한 다이아몬드를 쫓아서

jewelin 21-02-05 08:22

애셔 가(家): 완벽한 다이아몬드를 쫓아서_6대에 걸친 선구적인 다이아멘테어 가문 


조셉 애셔의 커리어에 있어 그 날은 매우 중요한 날이었다. 에드워드 7세 왕이 컬리넌 다이아몬드 연마사로 그를 임명했기 때문이다. 컬리넌 다이아몬드는 3,106 캐럿으로, 이 세상에서 발견된 가장 큰 크기의 보석 품질 다이아몬드 원석이었으며 영국 왕실의 보석이 될 예정이었다. 만약 작은 하나라도 잘못된다면, 그는 이 다이아몬드와 그의 평판을 모두 망치게 될 판이었다. 

1908년 2월 10일, 역사적인 다이아몬드를 클리빙 하는 그를 보기 위해, 기자들과 관중이 암스테르담의 그의 작업실로 모였다. 그러나, 계획되로 되지는 않았다. 수 개월간 준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애셔가 다이아몬드를 두 개 로 쪼개려는 순간, 그의 나이프가 부려졌다. 다행히도 스톤은 상하지 않았다. 

이 사건이 다이아몬드 연마사를 단념시키지는 못했다. 4일 후에, 애셔는 두번째 시도를 하였고, 이번에는 더 큰 칼날을 사용하여 성공했다. 그는 컬리넌 다이아몬드를 D 칼라 플로리스 타입 IIa 다이아몬드(가장 상질의 다이아몬드) 9개와, 더 작은 다이아몬드 96개로 성공적으로 연마하였다. 이 중 가장 큰 다이아몬드는 530 캐럿인 컬리넌 I으로, 영국 군주의 홀(scepter) 에 장식되었다. 현재는 런던 타워에 전시되어 있다. 호프 다이아몬드, 드레스덴 그린 다이아몬드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방문객이 많은 다이아몬드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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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다이아몬드 연마에 있다.


조셉 애셔는 다이아몬드의 아름다움과 브릴리언스를 보여주려면 컷팅이 중요하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한때는 인간에게 가장 단단한 물질인 다이아몬드를 정확하게 연마하려면 연마사가 자신의 감과 경험에만 의존해야 했고, 조셉은 무한한 인내력과 불굴의 용기를 보여왔다. 결국, 그는 마켓에 대해 그의 아버지로부터 배웠고, 그의 아버지는 그의 아버지인 아이삭 조셉 애셔(1854년 가업 시작)에게서 배웠다. 

조셉 애셔의 첫번째 행운은 1903년 그 당시 가장 큰 다이아몬드였던 997캐럿 엑셀시어 다이아몬드 연마 의뢰를 받은 것이다. 거대한 스톤에서 11개의 훌륭한 다이아몬드를 연마해냈고, 암스테르담에서 급증하고 있던 다이아몬드 연마 업계에서 그의 명성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

이 시기에, 암스테르담은 국제적인 다이아몬드 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었고, 브라질에서 새로 채광된 대량의 다이아몬드가 연마되기 위해 이 도시의 불멸의 실력 있는 작업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조셉 애셔와 그 형제들은 암스테르담의 다이아몬드 지역 중심가에 작업실을 열고, 최고 500명 이상의 다이아몬드 연마사(Polisher)를 고용하기도 했다. 로열 애셔사의 본부는 톨스트라트(Tolstraat) 127 번지에 원래 건물의 메인 타워에 아직도 위치하고 있지만, 예전의 공장은 고급 아파트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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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큰 것의 시작: 세계 최초 특허 다이아몬드 컷트 


1902년, 조셉 애셔는 세계 최초로 특허 다이아몬드 컷트를 개발하고 애셔 컷트라고 명명했다. 이후 30년 동안 2차 세계대전으로 모든 것을 상살하기까지 애셔 가(家)는 최고의 다이아몬드 연마 하우스로 명성을 얻어냈다. 전쟁 이후, 그들은 맨땅에서 다시 사업을 일으켰다. 

애셔가 최초의 특허 컷트를 고안한 지 거의 1세기만에, 그의 증조 조카들인 에드워드와 주프 애셔가 오리지널 설계에 16개의 패싯을 추가하여 다이아몬드 컷트를 개선하였다. 이로서, 다이아몬드의 굴절 품질을 더 향상 시키는 74개 패싯을 보유한 스티프-컷(steep-cut) 정사각형 다이아몬드가 탄생하였다. 이들은 새로운 스타일의 컷트를 로열 애셔 컷트로 특허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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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전히 다이아몬드의 마법에 흥분하고 있습니다.” – 리타 애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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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이상 가업의 수장으로 활동한 에드워드 애셔가 지난 3월에 은퇴하고, 그의 자녀인 리타와 마이크 애셔가 공동 사장이 되었다. 그들은 특허 다이아몬드 컷트인 로열 애셔 오벌 컷트, 로열 애셔 쿠션 컷트, 로열 애셔 브릴리언트 컷트를 추가해가며 로열 애셔의 전통을 이어 가고 있다. 

각 세대에 따라 애셔 가(家)의 가업은 진화했지만, 항상 동일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다이아몬드를 연마하는 것이다. 현재, 이 회사는 약혼과 결혼 반지 컬렉션을 생산하고, 새로운 세대의 다이아몬드 연마사를 계속 훈련시키고 있다. 


리타 애셔는 “우리 모두 다이아몬드의 마법에 즐거워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문을 닫아야 할 것 입니다.” 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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